껌의 습격: 멕시코 나무 수액이 미국 입맛을 사로잡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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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정글에서 시작됐다 — 치클레의 기원
Photo by Chris Abney on Unsplash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유카탄 반도의 열대우림 속에 사포딜라(Sapodilla, 학명 Manilkara zapota) 나무가 자란다. 껍질에 칼집을 내면 하얀 수액이 흘러내리는데, 이것이 바로 치클레(Chicle)다. '치클레'라는 이름 자체는 나우아틀어 tzictli에서 왔으며 "달라붙다"는 뜻이다.
마야인들은 수천 년 전부터 이 수액을 씹었다. 갈증을 달래고 배고픔을 잊게 해주는 실용적인 물질이었다. 아즈텍 사회에서는 씹는 행위에 사회적 규칙이 따랐다. 인류학자 제니퍼 매슈스(Jennifer P. Mathews)의 저서 Chicle: The Chewing Gum of the Americas에 따르면, 공개적으로 씹는 것이 허용된 건 아이와 미혼 여성뿐이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도착했을 때 이 습관은 이미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망명한 장군과 스태튼 아일랜드의 발명가
19세기 중반, 멕시코 대통령을 무려 열한 번이나 역임한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아나(1794~1876) — 알라모 전투의 그 장군 — 가 말년에 미국 스태튼 아일랜드에 망명 중이었다. 그는 치클레로 고무를 대체해 한몫 벌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당시 스태튼 아일랜드에 살던 사진작가 출신 발명가 토마스 애덤스(Thomas Adams, 1818~1905)는 산타 아나의 비서로 근무하며 그를 가까이서 보좌했다. 두 사람은 3만 달러어치 치클레를 투자해 장난감, 장화, 자전거 타이어를 만들었지만 전부 실패였다. 결국 산타 아나는 멕시코로 돌아갔고, 애덤스만 창고 가득한 치클레 덩어리와 함께 남겨졌다.
막막해진 애덤스가 우연히 동네 약국에서 소녀가 파라핀 왁스로 만든 껌을 1페니에 사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 전환점이 됐다. 산타 아나가 치클레를 씹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과 함께 치클레를 녹여 공 모양으로 빚어 약국에 가져갔고, 아무 향도 없었지만 단박에 팔렸다. 1871년 2월, "Adams New York No. 1 — Snapping and Stretching"이 약국 진열대에 1페니짜리로 등장했다. 현대 껌의 탄생이었다.
껌 제국의 탄생 — 애덤스에서 리글리까지
애덤스의 성공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을 불러왔다. 1884년에는 감초 향을 넣은 "Adams Black Jack"을 출시해 세계 최초 향 첨가 막대 껌이 됐고, 1888년에는 뉴욕 지하철 승강장에 최초의 껌 자동판매기를 설치했다. 1899년에는 주요 껌 제조사들을 합병해 아메리칸 치클 컴퍼니(American Chicle Company)를 설립했다.
| 연도 | 사건 |
|---|---|
| 1871 | 토마스 애덤스, Adams New York No.1 출시 및 제조 기계 특허 취득 |
| 1884 | "Adams Black Jack" — 세계 최초 향 첨가 막대 껌 출시 |
| 1888 | 뉴욕 지하철 최초 껌 자동판매기 설치 (Tutti-Frutti 판매) |
| 1891 | 윌리엄 리글리 주니어, 시카고에서 사업 시작 |
| 1893 | 리글리 "Juicy Fruit"과 "Spearmint" 동시 출시 — 미국 전역 열풍 |
| 1899 | 애덤스, 아메리칸 치클 컴퍼니 설립 (업계 합병) |
한편 윌리엄 리글리 주니어(1861~1932)는 1891년 32달러를 갖고 시카고로 이사해 비누를 팔기 시작했다. 비누 사은품으로 베이킹파우더를, 베이킹파우더 사은품으로 껌을 끼워줬더니 오히려 껌이 가장 잘 팔렸다. 그는 아예 껌 사업으로 갈아탔고, "빠르게, 자주 알려라(Tell 'em quick and tell 'em often)"는 철학 아래 광고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리글리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가 됐다.
치클레로: 정글을 누빈 채취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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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그 원료를 조달하는 사람들의 삶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멕시코와 과테말라 정글에서는 치클레로(chiclero)라 불리는 수확 노동자들이 생겨났다.
첫 비가 내리는 7월부터 2월까지, 치클레로들은 수개월간 정글 오지 캠프에서 생활했다. 새벽 일찍 홀로 정글로 들어가 마체테로 나무를 오르며 V자 홈을 지그재그로 내려 수액을 받았다. 나무 한 그루에서 한 번에 약 450그램에서 2.3킬로그램 정도의 수액을 얻을 수 있었고, 같은 나무를 다시 채취하려면 최소 4~8년을 기다려야 했다. 수액은 캠프로 가져와 끓여 벽돌 모양으로 굳힌 뒤 유카탄 반도 북쪽 해안 항구 푸에르토 모렐로스(Puerto Morelos)를 통해 미국으로 실어 날랐다.
삶은 항상 위태로웠다. 뱀에 물리고, 말라리아에 시달리고, "치클레로 궤양"이라 불리는 피부병에 걸려도 아무런 의료 지원이 없었다. 그럼에도 1930년대 초 멕시코는 미국 껌 제조사들이 사용하는 치클레의 약 77%를 공급하며 1,400만 파운드를 수출했다. 1942년 유카탄 반도에서만 400만 킬로그램이 채취됐고, 당시 치클레로 수는 약 2만 명에 달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치클레로들이 정글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는 것이다. 유명한 벽화가 발견된 보남팍(Bonampak)과 거대한 마야 유적지 칼라크물(Calakmul)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바로 치클레로들이 길을 안내했기 때문이다.
합성 껌의 등장과 치클레의 몰락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멕시코 치클레 수급이 불안정해졌다. 껌 회사들은 석유 기반 합성 원료 개발에 나섰다. 폴리비닐 아세테이트(polyvinyl acetate)를 비롯한 합성 폴리머가 치클레를 대체하기 시작했고, 1950년 이전에 미국산 껌에서 천연 치클레는 사실상 사라졌다. 1994년에는 치클레로 수가 고작 1,000명으로 줄었다. 최전성기 대비 반세기 만에 95%가 사라진 셈이다.
무분별한 채취도 문제였다. 1930년대 중반에는 멕시코 사포딜라 나무의 약 25%가 죽어나갔다고 기록된다. 싸고 균일한 품질의 합성 껌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정글의 치클레로들은 일감을 잃었고 사포딜라 나무는 방치됐다.
다시 정글로 — 치클레의 부활
21세기 들어 친환경·천연 소비 트렌드가 치클레를 다시 불러왔다. 1993년 멕시코 정부와 지역 공동체는 "치클레 파일럿 플랜"을 시작했고, 2003년에는 킨타나 로와 캄페체 주의 협동조합들이 합쳐 치클레로 컨소시엄(Chiclero Consortium)을 설립했다. 중간 상인을 없애고 수익의 80%를 직접 치클레로에게 돌렸다. 2007년에는 유기농 인증 껌 브랜드 Chicza를 출시해 현재 30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사포딜라 나무의 수액은 나무를 베지 않고도 수확하기 때문에 열대우림을 보존하는 경제 모델이 된다. 56개 마을, 600명 이상의 치클레로(대다수가 마야 원주민)가 컨소시엄을 통해 수익을 올린다. 씹고 버린 합성 껌은 수백 년이 지나도 분해되지 않는 반면, 천연 치클레 껌은 생분해된다. 최근에는 합성 껌이 씹을 때 미세플라스틱을 방출한다는 연구까지 나오면서 천연 껌에 대한 관심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오늘날 글로벌 껌 시장은 2024년 기준 약 290억 달러 규모다. 시장의 95% 이상은 여전히 합성 원료로 만들어지지만, 치클레 기반 유기농 껌 시장은 조용히 자라고 있다.
멕시코 정글 나무의 하얀 수액 한 방울은 마야 원주민의 일상에서 출발해, 망명한 독재자의 짐 속을 거쳐, 스태튼 아일랜드 한 발명가의 손에서 현대 껌이 됐다. 그리고 지금, 환경 위기 앞에서 다시 정글로 돌아가고 있다. 역사상 가장 달콤한 이민 성공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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