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도쿄선언 — 모두가 반대한 반도체 진출 결단의 전말
저는 '모두가 반대하면 그 결정은 하지 않는 게 맞다'는 말을 어느 정도 믿는 편입니다. 경험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리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1983년, 한 결정은 이 믿음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당시 72세였던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 이것이 이른바 '도쿄 선언'입니다. 그를 아는 사람 대부분이 코웃음을 쳤습니다. 결과만 먼저 말씀드리면, 그 비웃음은 10년 뒤 완전히 틀린 것으로 판명 났습니다.
이 글은 '모두가 반대한 사업'이 어떻게 오늘날 한국 최대 수출 산업이 됐는지, 그 결단의 과정을 정리한 글입니다.
도쿄선언, 왜 다들 코웃음 쳤을까?
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산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 대부분이 "나중에 망신만 당할 것"이라며 코웃음을 쳤고, 업계에는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돌았습니다.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 패권은 일본이 쥐고 있었고, NEC·도시바의 기술력은 무너지지 않는 성 같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국은 가전제품 조립은 잘했지만, 반도체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나라였습니다. 일본 쪽에서는 아예 도쿄 선언 자체를 무시해버렸습니다.
72세 회장이 밤잠을 이루지 못한 이유
이병철의 결단은 충동이 아니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여러 차례 세계 각국의 산업 시설을 직접 둘러보고,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한 오랜 관찰의 결과였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결심의 순간에는 그 역시 흔들렸습니다. 출장에서 돌아온 뒤 그는 몇 달간 한국이 미국·일본의 기술을 추적할 수 있을지, 막대한 투자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지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한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반도체 산업은 그에게도 엄청난 도박이었으니까요.
반대를 뒤집은 속도전 — 9개월 만의 64K D램
결단이 선 뒤부터는 거침없었습니다. 도쿄 선언 이후 삼성은 1983년 5월 메모리 개발에 착수했고, 같은 해 11월 7일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양질의 64K D램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선언 후 약 9개월 만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10년 이상 벌어져 있던 미·일과의 기술 격차를 4년 수준으로 좁힌 성과였습니다. 일본이 6년 넘게 걸렸던 개발을, 삼성은 반년 만에 해낸 셈입니다.
속도는 공장 건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1983년 9월 경기 기흥 공장 기공식에서 이병철은 '6개월 안에 공장 건설을 완료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통상 선진국에서 18개월 걸리던 공정이었는데도, 현장 직원들은 추운 날씨에 밤낮없이 일해 일정을 맞췄습니다.
도쿄 선언 10년 후, 세계 1위가 되다
그 뒤의 기록은 숫자로 말합니다. 1985년 반도체 수출 1억 달러를 넘겼고, 1986년에는 1M D램을 개발했습니다.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며 처음으로 일본을 앞질렀습니다. 그리고 도쿄 선언으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1993년, 삼성전자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에 올랐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왜 이병철은 암 투병 중에도 공장을 찾았을까?
결단의 무게를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세계 최초 16메가 D램을 개발해 '미스터 칩'으로 불린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의 회고입니다.
1987년 9월, 암 투병 중이던 이병철은 '한국 반도체가 일본 제품을 베꼈다'는 기사를 보고 화를 참지 못해 경기 기흥 반도체 기술원을 직접 찾았습니다. 몸이 쇠약해 계단 3개를 오르지 못하고 넘어져 다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는 "전 재산을 넣어서 반도체에 투자했는데, 우리가 남의 것을 베껴서 반도체를 만든단 말이야?"라며 분노했습니다. 이 방문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말은 지금도 회자됩니다. "영국이 증기기관을 만든 다음 수백 년간 기술 우위를 점하지 않았느냐. 내가 반도체 투자한 것도 우리나라가 먹고 살 기반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결단은 끝나지 않았다 — 지금 삼성 반도체는?
메모리 신화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삼성전자는 30년 넘게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반도체는 한국 최대 수출 품목이 됐습니다.
다만 모든 싸움을 이긴 건 아닙니다.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 분야에서는 대만 TSMC에 밀리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병철이 뿌린 씨앗을 이건희가 키웠다면, 다음 결단은 이재용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딱 한 줄로 정리하면 이것입니다. '모두가 반대한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어떤 결정 앞에서 주변의 만류에 흔들리고 계신 분이라면, 1983년 도쿄에서 있었던 이병철의 반도체 결단을 한번 떠올려 보시길 권합니다. 확신은 반대의 크기가 아니라, 준비한 시간의 깊이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참고 자료
- 도쿄선언 40년…'미스터칩'이 밝힌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 유훈' — 언론(머니투데이), 2023.09.07
- "삼성 반도체, 日 베꼈다"보도에 격노한 이병철, 달려간 곳은… — 언론(파이낸셜뉴스), 2023.09.07
- 한국이 할 수 있을까 고민한 73세 회장님…일본마저 꺾었다 — 언론(한국경제), 2023.10.17
- 4. 반도체 신화 - 우리역사넷 — 정부기관(국사편찬위원회)
- 도쿄선언 40년, 메모리 1위 30년…이재용에 주어진 과제 '타도 TSMC' — 언론(디지털데일리), 2023.02.08
- 이병철 '도쿄선언' 40년…반도체 위기에 정공법 카드 꺼낸 이재용 — 언론(이뉴스24), 2023.02.08
- [도쿄선언 40년-上] 과대망상 비난 뒤집고 반도체 신화 현실로 — 언론(EBN),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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