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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2일 일요일

한글 자음 ㄱㄴㄷ 순서, 발음기관을 본뜬 이유

한글 자음 ㄱㄴㄷ 순서 왜 이렇게 정해졌을까 발음기관을 본뜬 상형의 원리 가나다

저는 한글날마다 '세종대왕은 정말 대단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게 좀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자음 순서를 들여다보다가 진짜 놀란 지점은 따로 있었습니다 — ㄱㄴㄷ 순서, 사실 세종대왕이 정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이 순서가 어디서 왔는지, 발음기관을 본뜬 상형 원리부터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

이미지 설명
사진 제공: ASTERISK KWON | 출처: Unsplash

■ ㄱㄴㄷ은 세종대왕이 정한 순서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 자음 순서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은 훈민정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순서가 아닙니다. 이 순서는 1527년 최세진이 쓴 『훈몽자회』에서 비롯됐고, 1933년 '한글 마춤법 통일안'이 이를 이어받으면서 오늘날까지 굳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정한 자음 순서와, 우리가 사전에서 익숙하게 쓰는 순서 사이에는 약 80여 년의 간격이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원래 순서는 어떻게 정해졌던 걸까요 — 그 답은 자음이 만들어진 원리 자체에 있습니다.

■ 발음기관을 그대로 본뜬 다섯 개의 기본자

훈민정음 해례본 제자해에 따르면, 자음의 기본자 다섯 개(ㄱ, ㄴ, ㅁ, ㅅ, ㅇ)는 각각 발음할 때의 발음기관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들어졌습니다. 어금닛소리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혓소리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양을 형상화했습니다. 입술소리 'ㅁ'은 입의 모양을, 잇소리 'ㅅ'은 이의 모양을, 목구멍소리 'ㅇ'은 목구멍의 둥근 모양을 옮겨온 것입니다.

여기에 소리가 세지는 정도에 따라 획을 더한 것이 'ㅋ, ㄷ, ㅌ, ㅂ, ㅍ, ㅈ, ㅊ, ㅎ' 같은 가획자입니다. 원래 발음기관의 모양은 그대로 유지한 채 획만 하나씩 더했다는 점에서, 가획자 역시 상형의 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자음이 만들어진 세 단계 1단계 · 기본자 ㄱ ㄴ ㅁ ㅅ ㅇ 발음기관 모양을 본뜸 2단계 · 가획자 ㅋ ㄷ ㅌ ㅂ ㅍ ㅈ ㅊ ㅎ 소리가 세질수록 획을 더함 3단계 · 이체자 ㆁ ㄹ ㅿ 모양을 달리해 별도로 제작

■ 훈민정음 원래 순서는 지금과 달랐다 — 오행의 논리

훈민정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자음은 소리 나는 위치, 즉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 순서로 배열됐습니다. 어금니-혀-입술-이-목구멍 순으로, 오늘날의 'ㄱㄴㄷㄹㅁ...' 순서와는 전혀 다른 배열이었습니다.

이 순서는 임의로 정한 게 아니라 목화토금수 오행이 상생하는 순서를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이런 방식은 훈민정음만의 독창적인 발상은 아니었습니다 — 중국 송나라 때의 등운서 『절운지장도』에도 자모의 순서를 오음과 오행의 상생 관계로 설명하는 대목이 똑같이 등장합니다.

자음 순서, 그때와 지금 훈민정음 원래 순서(1446) ㄱㅋㆁ (어금니) ㄷㅌㄴ (혀) ㅂㅍㅁ (입술) ㅈㅊㅅ (이) ㆆㅎㅇ (목구멍) 오행 상생 순서 기준 지금 순서(1933~) ㄱㄴㄷㄹㅁ ㅂㅅㅇㅈㅊ ㅋㅌㅍㅎ 초·종성 사용 여부 기준

■ 순서가 뒤바뀐 결정적 사건, 최세진의 훈몽자회

지금의 순서로 넘어오는 결정적 전환점은 1527년, 최세진이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를 펴내면서였습니다. 최세진은 원래의 오행 순서 대신, '초성과 종성에 모두 쓰이는 글자냐, 아니냐'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초성과 종성에 두루 쓰이는 ㄱㄴㄹㅁㅅㅇ 등이 앞쪽으로 오고, 초성에만 쓰이는 ㅋㅌㅍㅊㅎ 등이 뒤로 밀려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음의 이름도 함께 정해졌는데, 'ㄱ' 아래 한자로 '其役'을 적어 초성과 종성의 음가를 동시에 나타낸 것이 오늘날 '기역'이라는 이름의 유래입니다.

■ 그래서 지금 우리는 왜 ㄱㄴㄷ 순서를 쓸까

1933년 조선어학회가 '한글 마춤법 통일안'을 만들면서, 훈몽자회의 순서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아 공식화했습니다. 이후 1988년 한글 맞춤법 개정에서도 이 틀은 유지됐고, 지금 사전과 자판에서 쓰는 순서로 자리 잡았습니다.

다만 이 순서를 두고 지금도 논쟁이 남아 있습니다. 일부 국어학 연구에서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오행 원리를 살려 자음 순서를 다시 짜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합니다 — 예컨대 'ㅈ'과 'ㅊ'의 위치를 조정해 아설순치후 오행 상생 순서에 맞추자는 식입니다.

결국 ㄱㄴㄷ 순서는 세종대왕의 창제 원리와 후대의 실용적 개편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다음에 사전을 넘기거나 자판을 두드릴 때, 그 순서 안에 담긴 500년의 논쟁을 한 번쯤 떠올려보시길 권합니다. 익숙한 것에도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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